4 다윗
4. 데이비드
데이비드의 탄생과 가계
“하나님의 택함받은 자”인 다윗은 이스라엘의 택함받은 자에 속한 가문에서 나왔습니다. 성경에 이름이 열거된 그의 조상들은 모두 뛰어난 우수성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다윗은 모세의 누이 미리암의 후손이었으므로 왕족 귀족의 혈통은 사제 귀족에 의해 강화되었습니다. 다윗은 그의 가문에서 통치자의 왕좌를 차지한 최초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증조부 보아스는 베들레헴의 재판관 입산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 이스라엘의 첫 번째 재판관이 된 옷니엘과 옷니엘의 형제 갈렙도 다윗의 가문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경건함과 덕의 예로, 다윗은 그의 할아버지, 특히 그의 아버지를 앞에 두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의 전 생애는 하나님을 향한 끊임없는 봉사였으며, 그래서 그의 이름은 “하인” 오벳이었고, 그의 아버지 예세는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학자 중 한 명이었으며, 죄에 물들지 않고 죽은 네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첫 조상의 모든 후손에게 타락 후에 죽음을 정하지 않으셨다면, 예세는 영원히 살았을 것입니다. 사실 그는 400세에 죽었고, 그다음에는 모압 왕의 손에 잔혹하게 죽었습니다. 다윗은 모압 사람들과 룻의 씨 사이의 친족 관계를 신뢰하며 사울 앞에서 도망칠 때 가족을 떠났습니다. 예세의 경건함은 보상받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메시아 시대에 그는 세상을 다스릴 여덟 왕자 중 한 명이 될 것입니다.
그의 경건함에도 불구하고, 예스는 항상 유혹에 강하지는 않았다. 그의 노예 중 한 명이 그의 호감을 사서, 아디엘의 딸인 그의 아내 나즈밧이 그 계획을 좌절시키지 않았다면, 그는 그녀와 불륜 관계를 가졌을 것이다. 그녀는 노예로 변장했고, 계략에 속은 예스는 자신의 아내를 만났다. 나즈밧이 낳은 아이는 해방된 노예의 아들로 주어졌는데, 그 이유는 아버지가 그에게 행해진 속임수를 알아채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 아이는 다윗이었다.
다윗은 어느 정도 아담에게 자신의 삶에 대한 빚을 졌습니다. 처음에는 그에게 할당된 존재의 시간은 겨우 3시간뿐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미래 세대를 아담 앞에서 검토하게 하셨을 때, 그는 하느님께 다윗에게 자신에게 정해진 천 년 중 칠십 년을 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하느님과 천사 메타트론이 서명한 증여 증서가 작성되었습니다. 70년은 아담에게서 다윗에게 합법적으로 양도되었고, 아담의 바람에 따라 아름다움, 통치권, 시적 재능이 그들과 함께 갔습니다.
기름부음 받은 왕
아름다움과 재능은 아담이 다윗에게 준 선물이었지만, 그것을 소유한 사람을 고난으로부터 보호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노예의 아들로 여겨져 형제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사막에서 아버지의 양을 돌보며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가 나중에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도록 준비시켜 준 것은 목동으로서의 삶이었습니다. 그는 온유한 배려로 자신에게 맡겨진 양 떼를 이끌었습니다. 어린 양은 부드러운 풀이 있는 목초지로 몰고 갔고, 덜 즙이 많은 허브 밭은 양 떼를 위해 따로 두었으며, 다 자란 튼튼한 숫양에게는 질긴 풀을 먹이로 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양을 치는 법을 알고 있으므로, 그는 내 양 떼 이스라엘의 목자가 될 것이다.”
사막의 고독 속에서 다윗은 놀라운 신체적 힘을 보여줄 기회를 얻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무기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자 네 마리와 곰 세 마리를 죽였습니다. 그의 가장 심각한 모험은 림과 함께한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잠자는 거대한 짐승을 만났고, 그것을 산으로 여기고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림이 깨어났고 다윗은 그 뿔에 올라 공중 높이 떠 있었습니다. 그는 구출된다면 림의 뿔 높이만큼 높이가 백 엘인 신의 성전을 짓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러자 신은 사자를 보냈습니다. 짐승의 왕은 림에게 경외감을 심어주었습니다. 림이 몸을 숙였고 다윗은 쉽게 둥지에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사슴이 나타났습니다. 사자가 그를 쫓았고 다윗은 사자와 림에게서 모두 구해졌습니다.
그는 28세가 될 때까지 목동의 삶을 계속 살다가 사무엘에게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는데, 사무엘은 특별한 계시를 통해 예새의 멸시받는 막내가 왕이 될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사무엘의 첫 번째 임무는 예새의 아들 중 한 명에게 기름을 부으라는 것이었지만, 어느 아들인지는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장 나이 많은 엘리압을 보고, 그를 하나님께서 택하신 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이 자신을 선견자라고 부른 것에 대한 지나친 자의식을 벌하기 위해 그가 속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미리 볼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실수는 용서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첫 번째 선택은 엘리압에게 있었습니다. 그의 폭력적인 성격, 다윗에 대한 그의 빠른 분노 때문에 그에게 예정된 지위가 그의 가장 어린 동생에게 옮겨졌습니다. 엘리압은 어떤 의미에서 그의 딸이 르호보암의 아내가 되는 것을 보고 보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또한 유다 왕들의 조상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구별을 누렸고, 엘리압이 왕이 될 것이라는 사무엘의 환상은 전적으로 거짓이 아니었다.
다윗이 선출된 것은 그가 기름부음을 받은 거룩한 기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서 분명했습니다. 사무엘이 다윗의 형제들에게 기름을 붓고자 했을 때, 기름은 뿔에 남아 있었지만, 다윗이 다가가자 기름은 스스로 흘러나와 그 위로 쏟아졌습니다. 그의 옷에 떨어진 물방울은 다이아몬드와 진주로 바뀌었고, 그에게 기름을 부은 후에 뿔은 전처럼 가득 찼습니다.
노예의 아들이 왕이 되었다는 것은 큰 놀라움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세의 아내가 그녀의 비밀을 밝히고, 자신을 다윗의 어머니라고 선언했습니다.
다윗의 기름부음은 한동안 비밀로 유지되었지만, 그 효과는 다윗에게 나타난 예언의 은사와 그의 놀라운 영적 발전으로 나타났습니다. 그의 새로운 업적은 자연스럽게 그에게 부러움을 안겨주었습니다.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학자였던 도엑보다 더 심하게 질투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도엑은 사울이 다윗을 자신의 시중드는 사람으로 궁정에 부르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을 지나치게 칭찬하기 시작하여 왕의 질투심을 불러일으키고 다윗을 그의 눈에 미워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성공했지만 사울은 다윗을 궁정에 부르려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어린 시절에 사울에게 알려졌고, 그 당시 왕은 그에게 큰 존경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 행사는 다윗이 정의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영리함을 보여준 행사였습니다. 한 부유한 여성이 일시적으로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재산을 가지고 다닐 수 없었고, 누구에게도 맡기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꿀 항아리에 금을 숨기는 방법을 택했고, 이를 이웃에게 맡겼습니다. 우연히 그는 항아리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아냈고, 금을 꺼냈습니다. 그녀가 돌아왔을 때 그 여인은 그릇을 받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금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녀는 불성실한 이웃을 상대로 제기할 증거가 없었고, 법정은 그녀의 고소를 기각했습니다. 그녀는 왕에게 호소했지만, 그도 도울 힘이 없었습니다. 그 여인이 왕궁에서 나왔을 때, 다윗은 그의 동료들과 놀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낙담을 보고, 그는 진실이 승리하도록 왕을 만나 뵙기를 요구했습니다. 왕은 그에게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하라고 허가했습니다. 다윗은 꿀 항아리를 깨라고 명령했고, 두 개의 동전이 그릇의 안쪽에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도둑은 그것들을 간과했고, 그것은 그의 부정직함을 증명했습니다.
골리앗과의 만남
다윗은 오랫동안 궁정에서 편안한 삶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골리앗이 취한 공격적인 태도는 그를 앞으로 몰고 갔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일 사람으로 지명된 것은 이상한 우연이었습니다. 골리앗은 혈연으로 다윗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기억하시겠지만 골리앗은 모압 여인 오르바의 아들이었고, 다윗의 조상 룻의 시누이였으며, 그녀의 자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둘 다 모압 왕 에글론의 딸들이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은 그들의 할머니들만큼이나 달랐습니다. 왜냐하면 경건하고 종교적인 유대인인 룻과 대조적으로 오르바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불명예로운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아들 골리앗은 “백 명의 아버지와 한 명의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조롱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한 사람에게도 보상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오르바가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40걸음 간 대가로, 그녀의 아들 블레셋 사람 골리앗은 40일 동안 힘과 재주를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오르바가 시어머니와 헤어질 때 흘린 네 방울의 눈물의 대가로, 그녀는 거인 아들 네 명을 낳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네 사람 중에서 골리앗은 가장 강하고 위대했습니다. 성경에서 그에 대해 말하는 것은 말할 수 있었던 것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성경은 의도적으로 악당의 위력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또한 골리앗이 불경건했지만 어떻게 감히 이스라엘의 신에게 도전하여 싸우게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온 힘을 다해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성한 예배를 방해하려고 했는지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아침과 저녁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셰마를 외울 준비를 하는 바로 그 시간에 진영에 나타났습니다.
더욱이 다윗이 골리앗을 미워하고 그를 없애기로 결심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골리앗에 맞서라고 격려했습니다. 그는 다윗이 거인으로부터 베냐민 사람 사울을 보호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조상 유다가 옛날에 사울의 조상인 베냐민의 안전을 약속했듯이요. 골리앗은 사울을 없애려고 했습니다. 그가 사울에 대해 원망한 것은 블레셋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 사이의 전투에서 골리앗이 율법의 거룩한 돌판을 탈취하는 데 성공했을 때 사울이 거인에게서 그것을 빼앗았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병 때문에 골리앗과 칼을 겨룰 수 없었고, 대신 전투에 나가자는 다윗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갑옷을 입었고, 힘센 왕의 갑옷이 전에 날씬했던 청년에게 잘 어울렸을 때, 사울은 다윗이 자신이 곧 맡게 될 중대한 임무를 위해 미리 정해졌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동시에 다윗의 기적적인 변신은 그의 질투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다윗은 골리앗과의 경쟁에서 전사로 차려입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는 단순한 양치기로서 그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다섯 개의 돌멩이가 스스로 다윗에게 왔고, 그가 그것들을 만졌을 때 그것들은 모두 하나의 돌멩이로 변했습니다. 다섯 개의 돌멩이는 하나님, 세 족장, 그리고 아론을 상징했습니다. 마지막 사람의 후손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얼마 전에 골리앗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자마자 거인은 청년의 마법의 힘을 깨달았습니다. 다윗이 상대에게 던진 사악한 눈은 그를 나병에 걸리게 하기에 충분했고, 바로 그 순간 그는 땅에 뿌리를 박고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골리앗은 자신의 무력함에 너무 혼란스러워서 무슨 말을 하는지 거의 알지 못했고, 마치 가축이 고기를 먹는 것처럼 다윗의 살을 들판의 가축에게 주겠다고 어리석은 위협을 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가 운명지어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승리를 확신한 다윗은 블레셋 사람의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던지겠다고 반박했습니다. 새에 대한 언급이 나오자 골리앗은 눈을 하늘로 들어 주변에 새가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그의 머리가 위로 올라가면서 바이저가 이마에서 약간 멀어졌고, 그 순간 다윗이 겨누었던 돌멩이가 노출된 부위를 맞혔습니다. 천사가 내려와 그를 땅바닥에 얼굴을 아래로 향하게 내던졌는데, 이는 하나님을 모독한 그 입이 흙으로 막히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너무 심하게 쓰러져서 그의 가슴에 두른 다곤의 형상이 땅에 닿았고 그의 머리는 다윗의 발 사이에 놓이게 되었는데, 다윗은 이제 그를 처치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골리앗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러 갑옷으로 싸여 있었고, 다윗은 갑옷을 벗고 거인의 머리를 베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이 시점에서 헷 사람 우리아가 그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다윗이 이스라엘인 아내를 구해 준다는 조건 하에 제안했습니다. 다윗은 그 조건을 수락했고, 우리아는 그에게 다양한 갑옷이 거인의 발꿈치에 어떻게 고정되어 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다윗의 승리는 자연스럽게 사울의 질투심에 불을 지폈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장군인 아브넬을 보내어 다윗이 유다 지파에 속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가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베레스 가문에 속하는지 아니면 제라 가문에 속하는지 알아보게 했습니다. 전자의 경우 다윗이 왕이 될 운명이라는 그의 의심이 확인될 것입니다. 옛날부터 다윗의 원수였던 도엑은 다윗이 모압 여인 룻의 후손이기 때문에 유대인 공동체에 속하지도 않는다고 말했고, 사울은 그 지역에서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아브넬과 도엑 사이에 모압에 관한 신명기의 법이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에게도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일어났습니다. 변증 전문가인 도엑은 모압 여성의 입국을 지지하는 아브넬의 모든 주장을 훌륭하게 반박했습니다. 아브넬의 견해가 항상 옳다는 것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사무엘의 권위에 호소해야 했습니다. 실제로, 이 분쟁은 폭력 위협에 의지해서만 해결될 수 있었습니다. 아마사의 아버지 이드라는 아랍식으로, 이 때문에 때때로 이스마엘 사람이라고 불렸는데, 사무엘의 율법 해석, 즉 모압 남자와 암몬 남자는 영원히 이스라엘 회중에서 제외되지만 모압과 암몬 여자는 제외되지 않는다는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 칼로 베어버리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사울의 추격
하나님께서 골리앗과의 결투에서 다윗 곁에 서 계셨던 것처럼, 그는 다른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다윗 곁에 서 계셨습니다. 종종 그가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고 생각했을 때, 하나님의 팔이 갑자기 그를 도우셨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구제를 가져다주셨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지혜롭고 공정한 인도에 대한 지시를 전달하셨습니다.
다윗은 한때 신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은 전적으로 아름답고 선합니다. 다만 광기만 빼고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옷을 찢고 야유하는 아이들의 무리에게 쫓기는 미친 사람에게서 세상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자 신이 대답했습니다. “진실로, 네가 나에게 광기로 너를 괴롭히기를 간청할 때가 올 것이다.” 이제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가다가 갓에 사는 블레셋 왕 아기스에게 갔을 때, 골리앗의 형제들이 이교도 왕의 경호원이 되어 형제를 죽인 자를 처형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아기스는 이교도였지만 경건했기 때문에 시편에서 그를 아비멜렉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경건함으로 유명했던 그랄 왕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윗의 적들을 달래려고 했습니다. 그는 골리앗이 유대인들에게 싸움을 도전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켰고, 그러므로 그가 결과를 감수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합당하다고 했습니다. 형제들은 다시 한 번 동의했습니다. 만약 그 견해가 우세하다면 아기스는 다윗에게 왕좌를 넘겨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싸움의 조건에 따라 승자는 패배한 자를 자신의 종으로 다스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괴로움 속에서 하느님께 아기스와 그의 궁정의 눈에 미친 사람으로 보이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하느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블레셋 왕의 아내와 딸은 둘 다 이성을 잃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외침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게 미친 사람이 없어서 이 놈을 데려와서 내 앞에서 미친 놈 노릇을 하게 하였느냐?” 이렇게 해서 다윗은 구출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는 언제나 주님을 찬송하리이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시편을 지었는데, 여기에는 미친 때조차도 포함됩니다.
다른 경우에 다윗은 거미와 같은 겉보기에 쓸모없는 생물을 만든 데 대한 하나님의 지혜에 대한 의심을 표현했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거미줄을 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는 거미줄조차도 중요한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놀라운 증거를 가져야 했습니다. 어느 때 그는 동굴에 피난을 갔고, 사울과 그의 수행원들은 그를 쫓아가서 들어가 그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거미를 보내어 그 입구에 거미줄을 엮게 하셨고, 사울은 그의 부하들에게 동굴에서 헛되이 수색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거미줄은 아무도 그 입구를 통과하지 않았다는 확실한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다윗이 그들 중 한 사람에게 목숨을 빚졌을 때, 그는 말벌에 대한 경멸에서 치유되었습니다. 그는 그들이 구더기를 키우는 것 외에는 아무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윗은 사울과 그의 수행원들이 진영에서 깊이 잠들어 있는 동안 그들을 놀라게 했고, 그는 자신의 관대한 마음을 증명하기 위해 거인 아브넬의 발 사이에 서 있던 항아리를 가져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브넬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그의 무릎은 당겨져 있어서 다윗은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의도를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항아리를 가지고 물러나자 아브넬은 발을 뻗고 두 개의 견고한 기둥으로 다윗을 눌렀습니다. 아브넬이 말벌에 쏘이지 않았다면 그의 목숨은 잃었을 것입니다. 아브넬은 잠에서 기계적으로 발을 움직여 다윗을 풀어주었습니다.
다윗이 도망하는 동안 그에게 일어난 다른 기적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사울과 그의 부하들이 다윗을 에워싸고 있을 때 천사가 나타나 그를 집으로 불러 블레셋 사람들의 땅을 습격하는 것을 물리쳤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쫓는 것을 포기했지만, 대다수가 그렇게 결정한 후에야 포기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윗을 잡는 것이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치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말렉 사람들과의 전투에서 다윗은 위에서 직접 개입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번개와 시트로 어두운 밤을 밝혀서 그는 싸움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
다윗이 왕위에 오른 후 첫 생각은 아담, 노아, 아브라함 시대부터 신성했던 예루살렘을 이교도의 손아귀에서 빼앗는 것이었습니다. 이 계획은 여러 가지 이유로 실행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을 소유한 여부스 사람들은 막벨라 동굴을 아브라함에게 양도한 헷족의 후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후손들이 수도 예루살렘을 강제로 빼앗기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말입니다. 아브라함과 헷족의 후손들 간의 이 합의를 이어받아 청동 기념물이 세워졌고, 다윗이 적대적인 의도로 예루살렘에 접근했을 때 여부스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약속이 새겨져 있고 여전히 읽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들은 다윗이 높은 성벽으로 둘러싼 도시를 점령하기 전에 기념물을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요압은 예루살렘에 들어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성벽 근처에 키가 큰 사이프러스 나무를 세우고 아래로 구부린 다음 다윗의 머리 위에 서서 나무 꼭대기를 꼭 움켜쥐었습니다. 나무가 다시 솟아올랐을 때, 요압은 성벽 위에 높이 앉아 그 위로 뛰어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성 안에 들어가자마자 기념비를 파괴하고 예루살렘을 차지했습니다. 다윗에게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성벽이 그의 앞에서 낮아져서 그는 어려움 없이 성 안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강제적인 수단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부스 사람들에게 600셰겔을 제안했습니다. 이스라엘 지파마다 50셰겔씩이었습니다. 여부스 사람들은 그 돈을 받고 다윗에게 매매 증서를 주었습니다.
예루살렘을 획득한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쟁을 준비해야 했고, 그 전쟁에서 왕은 영웅적인 용기와 하나님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뢰를 즉시 증명했습니다. 그는 후자의 특성을 거인 계곡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두드러지게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뽕나무 꼭대기에서 행진하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블레셋 군대를 공격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교도들을 경건한 사람들에게 넘기기 전에 이교도들의 수호 천사들에게 심판을 내리고자 하셨고, 나무 꼭대기의 움직임은 전투가 진행될 수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적은 그들과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 불과 4엘이 있을 때까지 진군했습니다. 후자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달려들려고 했지만, 다윗은 그들을 제지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나무 꼭대기가 움직이기 전에 블레셋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면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체하면 블레셋 사람들에게 죽을 가능성이 크지만, 적어도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경건한 사람들로서 죽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나무 꼭대기가 바스락거리고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을 성공적으로 공격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사울에게서 왕권을 빼앗아 다윗에게 준 이유를 끊임없이 묻는 천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울과 다윗의 차이를 보라.”
다윗의 다른 원정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아람 사람 쇼박과의 전쟁인데, 그는 거대한 체구와 힘에도 불구하고 그를 정복했습니다. 쇼박은 비둘기장만큼 키가 컸고, 그를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보는 사람의 가슴에 공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아람 장군은 야곱과 라반이 팔레스타인과 아람의 국경에 세운 기념비 때문에 다윗이 시리아 사람들을 부드럽게 대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기념비는 야곱과 라반이 자신들이나 그들의 후손이 서로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언약의 표시로 세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기념비를 파괴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의 유물, 즉 족장이 블레셋 사람들의 왕 아비멜렉에게 준 노새의 고삐를 신뢰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언약의 증서였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강제로 빼앗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대담한 만큼 정의로웠다. 족장들이 맺은 언약을 무시하는 일은 그의 생각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사실, 아람인과 블레셋인과의 전쟁을 위해 떠나기 전에 그는 산헤드린에 두 나라의 주장을 주의 깊게 조사하라고 명령했다. 블레셋인의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들은 이삭과 조약을 맺은 블레셋인의 후손이 아니었다. 그들은 훨씬 후에 키프로스에서 이주해 온 것이다. 반면에 아람인은 사려 깊은 대우를 받고 그들의 주장을 포기했는데, “아람인” 발람 시대에, 그리고 나중에 옷니엘 시대에 그들의 왕 구산 리사다임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공격하고 전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아히도펠
다윗의 신하들과 수행원들 가운데서 두드러진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그의 고문 아히도벨인데, 왕은 밧세바가 그의 손녀인 가족적 유대 관계로 그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아히도벨의 지혜는 초자연적이었습니다. 그의 조언은 항상 우림과 둠밈이 내린 신탁과 일치했고, 그의 지혜가 아무리 컸더라도 그의 학식은 그에 비견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아히도벨이 매우 어린 나이에 죽었을 때 33세가 채 되지 않았지만 주저하지 않고 그의 지시에 복종했습니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진실한 경건함뿐이었고, 이것이 결국 그의 몰락을 초래했는데, 그것이 그를 다윗에 대한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내세에서 자신의 몫마저 잃었습니다.
그는 점성술과 다른 징조들에 의해 오도되어, 자신의 왕권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했지만, 사실은 손녀 밧세바의 왕적 운명을 가리켰습니다. 그는 잘못된 믿음에 사로잡혀 압살롬에게 전례 없는 범죄를 저지르도록 교활하게 부추겼습니다. 따라서 압살롬은 반역으로 아무런 이득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아버지를 파멸시켰지만, 여전히 가족의 순수성을 어긴 죄로 책임을 지고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고, 이스라엘의 위대한 현인 아히도벨에게 왕좌로 가는 길이 열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과 아히도벨의 관계는 압살롬의 반란 이전에도 다소 긴장되어 있었습니다. 아히도벨의 감정은 다윗이 왕위에 오른 직후 단 하루에 9만 명 이상의 관리에게 직위를 부여했을 때 무시당함으로써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날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언약궤를 게바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야 할 때, 언약궤를 잡으려던 제사장들이 공중으로 들어올려져 땅에 난폭하게 던져졌습니다. 절망에 빠진 왕은 아히도벨에게 조언을 구했고, 그는 조롱조로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네가 방금 관직에 임명한 지혜자들에게 물어보렴.” 다윗이 치료법을 알고 고통받는 사람에게 그것을 주지 않는 자에게 저주를 퍼부었을 때에야 아히도벨은 제사장들이 취하는 모든 걸음마다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이 조치가 효과가 있었고 언약궤와 관련하여 더 이상의 재앙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아히도벨의 말은 진심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 불행한 사건의 진짜 이유를 알고 있었고, 왕에게 그것을 숨겼습니다. 다윗은 언약궤를 제사장들의 어깨에 메는 법을 따르지 않고 마차에 실어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아히도벨이 다윗에게 적대감을 품은 것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도 드러났습니다. 다윗이 성전의 기초를 파고 있을 때, 1,500큐빗 깊이에서 파편이 발견되었습니다. 다윗이 그것을 들어올리려고 했을 때, 파편이 “너는 할 수 없다”고 외쳤습니다. “왜 안 되느냐?” 다윗이 물었습니다. “내가 심연에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하나님의 음성이 시내산에서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이다’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 들려서 땅이 흔들리고 심연에 가라앉은 시간부터. 나는 심연을 덮기 위해 여기 누워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파편을 들어올렸고, 심연의 물이 솟아올라 땅을 침수시킬 위기에 처했습니다. 아히도벨은 그 곁에 서 있었고, 그는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이제 다윗은 죽음을 맞이할 것이고, 나는 왕이 될 것이다.” 바로 그때 다윗이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물의 흐름을 막는 법을 알면서도 막지 못하면 언젠가는 스스로 목을 조를 것입니다.” 그러자 아히도펠은 그 조각에 하나님의 이름을 새기고 그 조각을 심연에 던졌습니다. 물은 즉시 가라앉기 시작했지만, 너무 깊이 가라앉아서 다윗은 땅이 습기를 잃을까 두려워했고, 그는 물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15곡의 “상승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저주는 실현되었습니다. 아히도벨은 목을 매달아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유언에는 다음의 세 가지 행동 규칙이 들어 있었습니다. 1. 행운의 총애를 받는 사람에게는 어떤 일도 하지 말라. 2. 다윗의 왕가에 맞서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하라. 3. 오순절이 화창한 날에 치러지면 밀을 뿌리라.
후손들은 아히도펠의 지혜의 아주 작은 일부만을 알게 되었으며, 그 작은 부분은 그의 제자였던 소크라테스와 그가 쓴 운세책이라는 매우 다른 두 가지 출처를 통해 전해졌습니다.
요압
전사 요압은 모든 면에서 아히도벨과 대조적이었습니다. 그는 다윗의 오른팔이었습니다. 요압이 전쟁을 지휘하지 않았다면 다윗은 토라를 공부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진정한 유대인 영웅의 모범이었으며, 동시에 학식, 경건함, 선함으로 유명했습니다. 그의 집은 모든 사람에게 활짝 열려 있었고, 그가 수행한 캠페인은 항상 사람들에게 이로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사치품까지 빚졌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산헤드린의 의장이었기 때문에 학자들의 복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요압은 사람들의 성격과 의견을 분석하는 데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윗 왕의 말을 들었을 때, “아버지가 자식을 불쌍히 여기는 것 같이 주께서도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신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 비교가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비교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놀랐고, 어머니의 사랑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일반적으로 더 강하고 더 자기 희생적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는 눈을 뜨고 다윗의 생각이 사실에 의해 뒷받침되는지 확인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여행을 하던 중 우연히 열두 자녀를 둔 가난한 노인의 집에 들렀습니다. 아버지는 아무리 빈약하더라도 자신의 손으로 수고하여 그들을 모두 부양했습니다. 요압은 열두 자녀 중 한 명을 그에게 팔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면 한 명의 보살핌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 판매 가격은 나머지 아이들을 더 잘 부양하는 데 사용될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선량한 아버지는 그 제안을 단호하게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요압은 어머니에게 다가가서 자녀 한 명에게 금 데나리온 백 개를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녀가 유혹을 물리쳤지만, 마침내 그녀는 굴복했습니다. 아버지가 저녁에 돌아왔을 때, 그는 늘 그랬듯이 빵을 열네 조각으로 자르고, 자신과 아내, 그리고 열두 자녀를 위해 먹였습니다. 그는 몫을 나눠주면서 아이 한 명을 놓쳤고, 그 아이의 운명을 말해 달라고 고집했습니다. 어머니는 그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백했습니다. 그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고, 다음 날 아침 그는 요압에게 돈을 돌려주고, 아이를 내주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떠났습니다. 오랜 협상 끝에, 아버지가 그를 죽이겠다고 위협한 후에, 요압은 아이를 노인에게 내주며 “예, 다윗이 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을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옳았습니다. 부양해야 할 열두 자녀를 둔 이 불쌍한 친구는 그 중 한 명을 위해 나와 죽을 때까지 싸울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침착하게 집에 남아서 돈을 받고 그 아이를 내게 팔았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요압의 모든 영웅적 업적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아말렉 사람들의 수도를 점령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군대의 꽃인 1만 2천 명이 요압의 지휘 아래 6개월 동안 아말렉 사람들의 수도를 포위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습니다. 군인들은 장군에게 아내와 자녀에게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요압은 그렇게 하면 경멸과 조롱을 받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교도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상대로 연합하도록 격려될 것입니다. 그는 그들이 그를 슬링으로 도시에 던진 다음 40일 동안 기다리자고 제안했습니다. 이 기간이 끝나고 요새의 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본다면 그것은 그가 아직 살아 있다는 신호가 될 것입니다.
그의 계획은 실행되었다. 요압은 돈 천 개와 칼을 가지고 갔다. 그가 슬링에서 던져졌을 때, 그는 과부의 뜰에 떨어졌고, 그의 딸이 그를 붙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의식을 되찾았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포로로 잡혀서, 그를 잡아간 사람들이 그를 죽이고자 했던 도시에 던져 넣은 아말렉 사람인 척했다. 그는 돈을 받았고, 그것을 그의 접대자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그는 친절하게 대접을 받았고, 아말렉 사람의 옷을 받았다. 그렇게 차려입은 그는 10일 후에 도시를 시찰하는 여행을 떠났고, 그 도시가 엄청나게 큰 것을 알았다.
그의 첫 번째 심부름은 무기 제작자를 찾아가서, 넘어져서 부러진 그의 칼을 고치는 것이었습니다. 장인이 요압의 무기를 살펴보았을 때, 그는 뒤로 물러섰습니다. 그는 그런 칼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칼을 만들었는데, 요압이 그것을 단단히 잡자 거의 즉시 두 조각으로 부러졌습니다. 두 번째 칼에도 같은 일이 일어났고, 세 번째 칼에도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마침내 그는 받아들일 만한 칼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요압은 대장장이에게 칼로 누구를 죽이길 원하는지 물었고, 대답은 “이스라엘 왕의 장군 요압입니다.”였습니다. “내가 그 사람입니다.” 요압이 말했고, 대장장이가 놀라서 그를 돌아보았을 때, 요압은 그를 너무나 능숙하게 찔러서 피해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길에서 만난 아말렉 전사 오백 명을 베어 죽였고, 그를 배신할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악마의 왕 아스모데우스가 도시 주민들을 맹렬히 공격하여 대량 학살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는 군대와 함께 은퇴한 지 10일이 지난 후, 두 번째로 출격하여 아말렉 사람들 사이에 엄청난 피를 흘렸고, 그의 피투성이 무기는 그의 손에 달라붙었고, 그의 오른손은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모든 힘을 잃었으며, 그의 팔로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숙박 시설로 서둘러 가서 그의 손에 뜨거운 물을 붓고 칼에서 손을 떼어냈습니다. 그가 가는 길에 그가 성읍에 떨어졌을 때 그를 붙잡아준 여자가 그에게 “당신은 우리와 함께 먹고 마시지만, 우리의 용사들을 죽이는군요”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배신당한 것을 보고 그는 그 여자를 죽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칼이 그녀에게 닿자마자, 칼이 그의 손에서 분리되었고, 그의 손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죽은 여자가 아이를 가졌고, 태아의 피가 칼을 풀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요압이 수천 명을 죽인 후, 밖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장군이 죽은 것처럼 애도하기 시작하던 바로 그 순간에 도시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한마음으로 “이스라엘아, 들으라. 여호와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여호와는 유일하시다”고 외쳤습니다. 요압은 높은 망대에 올라가서 웅장한 음조로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리라”고 외쳤습니다. 높고 대담한 용기에 고무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도시를 공격하여 점령할 수 있도록 허락을 요구했습니다. 요압이 망대에서 내려오려고 돌아섰을 때, 그는 자신의 발에 시편의 여섯 구절이 새겨진 것을 보았는데, 첫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환난의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네 보호가 되시느니라.” 나중에 다윗은 세 구절을 더 추가하여 시편을 완성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말렉의 수도를 함락시키고 그 도시에 있는 이교 신전을 파괴했으며, 왕을 제외한 모든 주민을 죽였습니다. 그들은 왕의 머리에 순금 면류관을 씌운 채 다윗 앞에 끌려 나왔습니다.
다윗의 경건함과 그의 죄
전쟁에서의 위대한 업적이나 놀라운 행운이 다윗을 경건한 길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거나, 어떤 일에서든 그의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왕이 된 후에도 그는 스승인 야일 사람 이라와 므비보셋의 발치에 앉았습니다. 그는 항상 종교적 문제에 대한 결정을 법에 따라 내리기 위해 후자에게 제출했습니다. 왕의 의무로 인해 여가 시간이 생기면 그는 공부와 기도에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는 “60번의 호흡”으로 잠을 잤습니다. 자정이 되자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바친 숫양의 창자로 만든 하프의 줄이 진동하기 시작했습니다. 하프에서 나는 소리에 다윗이 깨어났고, 그는 즉시 일어나 토라를 공부하는 데 전념했습니다.
공부 외에도 시편을 쓰는 데 당연히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시편을 완성했을 때 그의 마음은 교만으로 가득 찼고, 그는 “세상의 주님이시여, 우주에 나처럼 당신을 찬양하는 다른 피조물이 있습니까?”라고 외쳤습니다. 개구리가 왕에게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그렇게 교만하지 마십시오. 나는 당신보다 더 많은 시편을 지었고, 게다가 내 입에서 나온 모든 시편에는 3천 가지의 비유가 곁들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진실로 다윗이 교만함에 빠졌다면 그것은 잠깐일 뿐이었습니다. 그는 원칙적으로 겸손의 모범이었습니다. 그가 찍은 동전에는 앞면에 양치기의 지팡이와 주머니가 새겨져 있었고, 뒷면에는 다윗의 탑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다른 면에서도 그의 태도는 겸손했는데, 마치 그가 여전히 양치기이고 왕이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의 위대한 경건함은 그의 기도에 그토록 효과적인 효과를 부여하여 하늘에 있는 것들을 땅으로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경건한 왕이 전쟁으로 얻은 첫 번째 휴식을 이용하여 하나님께 예배의 집을 짓겠다는 그의 계획을 수행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다윗이 성전을 짓는 계획을 생각해 낸 바로 그 밤에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에게 서둘러 가거라. 나는 그가 생각에 따라 처형이 빠르게 뒤따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가 성전 공사를 위해 일꾼을 고용한 다음 실망해서 나에 대해 불평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게다가 나는 그가 선행을 하겠다고 서약으로 의무를 지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가 서약에서 면제받기 위해 산헤드린에 신청해야 하는 당혹스러움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다윗은 나단이 자기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듣고 떨기 시작하며 말했습니다. “아,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분의 성소를 세울 자격이 없다고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아니, 네가 흘린 피는 희생의 피라고 생각하지만, 네가 성전을 짓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그러면 성전이 영원하고 파괴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좋을 텐데요.” 다윗이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에게 다음과 같은 대답이 내려졌습니다. “나는 이스라엘이 죄를 지을 것을 예견합니다. 나는 성전에 내 분노를 쏟을 것이고, 이스라엘은 멸망에서 구원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선한 의도는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성전은 솔로몬이 지었다 하더라도 당신의 것이라 불릴 것입니다.”
다윗의 생각과 계획은 전적으로 선하고 고상한 것에 주어졌습니다. 그는 악한 성향이 지배할 수 없는 몇 안 되는 경건한 사람 중 한 명입니다. 그는 본래 밧세바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를 범죄로 이끄신 것은 다른 죄인들에게 “다윗에게 가서 회개하는 법을 배우라”고 말씀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실 다윗은 엄청난 살인과 간통죄로 기소될 수 없습니다. 완화할 만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군인들이 아내에게 이혼 증서를 주는 것이 관례였는데, 군인 남편들이 전쟁이 끝나고 돌아오지 않을 경우에만 효력이 있었습니다. 우리아가 전투에서 쓰러지자 밧세바는 정기적으로 이혼하는 여자였습니다. 남편의 죽음에 관해서는 전적으로 다윗의 탓으로 돌릴 수 없습니다. 우리아는 왕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집에서 편히 쉬기를 거부함으로써 사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처음부터 밧세바는 하나님에 의해 다윗에게 정해진 여인이었지만, 엎드린 골리앗의 갑옷을 풀어주는 데 도움을 주면 헷 사람 우리아에게 이스라엘 여자를 아내로 주겠다고 가볍게 약속했다는 벌로, 왕은 그녀를 얻기 전에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더욱이 밧세바 사건은 다윗의 지나친 자의식에 대한 처벌이었습니다. 그는 하느님께 자신을 유혹에 인도하여 자신의 변함없음을 증명해 달라고 공정하게 간청했습니다. 그것은 이렇게 일어났습니다. 그는 한때 하느님께 불평했습니다. “세상의 주님, 사람들이 왜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말하고, 왜 다윗의 하느님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대답이 왔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내가 시험했지만, 당신은 아직 시험받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간청했습니다. “그러면 주님, 나를 시험해 보시고 시험해 주십시오.” 하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시험하고, 족장들에게 주지 않은 것도 주겠다. 네가 여자를 통해 유혹에 빠질 것이라고 미리 말하겠다.”
사탄이 새의 모습으로 그에게 나타난 적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에게 화살을 던졌습니다. 사탄을 때리는 대신 화살은 빗질하는 밧세바를 가린 고리버들 스크린을 튕겨냈습니다. 그녀를 보고 왕은 격정을 느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범죄를 깨달았고 22년 동안 회개했습니다. 그는 매일 한 시간씩 울고 “재가 묻은 빵”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훨씬 더 무거운 회개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는 반년 동안 나병으로 고생했고, 평소에 그를 가까이서 지켜보던 산헤드린조차도 그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는 육체적으로 고립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고립되어 살았습니다. 그 기간 동안 셰키나가 그에게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압살롬의 반역
그러나 다윗에게 가해진 모든 형벌 가운데 그의 아들의 반역만큼 가혹한 형벌은 없었습니다.
압살롬은 너무나 거대한 체구여서, 두개골의 눈구멍에 서 있는 엄청난 체구의 사람이 코까지 가라앉았습니다. 그의 놀라운 머리카락에 관해서는, 성경에 나오는 설명은 그것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한 개념을 전달하지 않습니다. 압살롬은 나시르인의 서원을 했습니다. 그의 서원은 평생이었고, 그의 머리카락이 특히 많이 자랐기 때문에, 법은 그가 매주 약간씩 머리카락을 깎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이 작은 양의 무게는 200셰겔에 달했습니다.
압살롬은 그의 대담한 반란을 큰 교활함으로 꾸몄습니다. 그는 왕의 아버지로부터 그가 방문하는 모든 마을에서 그의 수행원을 위해 두 명의 장로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편지를 확보했습니다. 이 문서를 가지고 그는 팔레스타인 전역을 여행했습니다. 그는 각 마을에서 가장 뛰어난 두 사람을 찾아가서 동행하도록 초대했고, 동시에 그의 아버지가 쓴 것을 보여주고, 그가 그들을 특별히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을 선택했다고 확신시켰습니다. 그래서 그는 200개의 법정의 수장들을 모으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것이 성취되자 그는 큰 연회를 마련했고, 그 연회에서 그는 그의 사절 중 한 명을 그의 손님 두 명 사이에 앉혀서 그들을 그의 대의에 끌어들이려고 했습니다. 이 계획은 전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마을의 장로들이 압살롬을 지지했지만, 그들의 마음속으로는 다윗의 승리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압살롬의 추종자들 중 일부가 비밀리에 그를 지지했다는 사실, 즉 아들이 그를 쫓았지만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충실했다는 사실은 다윗의 괴로움을 어느 정도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최악의 상황이 닥치더라도 압살롬이 적어도 그를 불쌍히 여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다윗의 절망은 끝이 없었습니다. 그는 우상을 숭배하려던 참이었는데, 그의 친구인 아렉 사람 후새가 그에게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백성은 그런 왕이 우상을 섬기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다윗이 대답했습니다. “나 같은 왕이 그의 아들에 의해 죽임을 당해야 합니까? 하느님께서 내 불행에 대해 책임을 지고 그분의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보다 우상을 섬기는 것이 나에게 낫습니다.” 후새가 그를 책망했습니다. “왜 포로와 결혼했나요?” “그게 잘못이 아닙니다.” 다윗이 대답했습니다. “법에 따라 허용되는 일입니다.” 그러자 후샤이가 말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을 허용하는 구절과 성경에서 바로 뒤에 나오는 구절 사이의 연관성을 무시했습니다. 그 구절은 불순종하고 반항하는 아들을 다루고 있으며 그러한 결혼의 자연스러운 결과를 다루고 있습니다.”
후새는 다윗의 유일한 충실한 친구이자 지지자가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나하스의 아들 쇼비는 암몬 왕 하눈과 동일인으로, 처음에는 다윗의 원수였지만 나중에는 그의 동맹이 되었습니다. 그의 또 다른 친구인 바르실래도 그의 충성심으로 그를 놀라게 했는데, 전반적으로 그의 도덕적 태도는 상상할 수 있는 최고가 아니었습니다.
압살롬의 최후는 공포에 휩싸였다. 그가 참나무 가지에 걸렸을 때, 그는 칼로 머리카락을 자르려고 했지만, 갑자기 그는 지옥이 아래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았고, 살아서 심연에 몸을 던지는 것보다 나무에 매달리는 것을 택했다. 압살롬의 범죄는 실제로 극심한 고문을 받을 만한 성격의 것이었고, 그래서 그는 다가올 세상에서 아무런 몫도 없는 소수의 유대인 중 한 명이다. 그의 거처는 지옥에 있으며, 그는 두 번째 부문에서 열 개의 이교도 국가를 지배하는 임무를 맡았다. 복수하는 천사들이 국가를 심판하기 위해 앉을 때마다, 그들 역시 압살롬에게 처벌을 내리고 싶어하지만, 그때마다 하늘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를 징계하지 말고, 불사르지 말라. 그는 이스라엘 사람이요, 내 종 다윗의 아들이다.” 그러자 압살롬은 왕좌에 앉았고, 왕에게 합당한 대우를 받았다. 지옥의 극심한 형벌이 그에게서 이렇게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이 그를 애도하면서 아들의 이름을 여덟 번이나 반복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다윗의 중재는 압살롬의 잘린 머리를 그의 몸에 다시 붙이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압살롬은 죽을 당시에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의 모든 자녀, 즉 세 아들과 딸이 요압의 곡식 밭에 불을 지른 죄로 그보다 먼저 죽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속죄
이 모든 고통은 다윗의 죄를 속죄하기에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죄가 언제까지 네 손에 숨겨져 속죄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겠느냐? 네 때문에 제사장 도시인 놉이 파괴되었고, 네 때문에 에돔 사람 도엑이 경건한 자들의 교제에서 쫓겨났으며, 네 때문에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이 죽임을 당했다. 네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가? 네 집이 멸망하는 것인가, 아니면 네 자신이 네 원수의 손에 넘겨지는 것인가?” 다윗은 후자의 운명을 선택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사냥을 하던 중, 사슴의 모습을 한 사탄이 그를 더욱 더 유혹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영토로 들어가게 했고, 그곳에서 그는 골리앗의 형이자 그의 적수인 거인 이스비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형의 원수를 갚고 싶어서 다윗을 붙잡아 포도주 틀에 던졌습니다. 그곳에서 왕은 땅이 기적적으로 가라앉지 않았다면 고문을 당했을 것이고, 그래서 즉사로부터 구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곤경은 여전히 절박했고, 그를 구출하기 위해서는 두 번째 기적이 필요했습니다.
그 시간에 다윗의 사촌 아비새는 안식일의 도래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왕의 불행은 안식일이 다가오려는 금요일에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아비새가 몸을 씻으려고 물을 부었을 때, 그는 갑자기 물 속에 피방울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깃털을 뽑고 신음하며 울부짖는 비둘기 한 마리에 놀랐습니다. 아비새는 “비둘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상징입니다. 이스라엘 왕 다윗이 곤경에 처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집에서 왕을 찾지 못하자, 그는 두려움에 확신을 갖고, 왕의 안장 짐승인 가장 빠른 동물을 타고 다윗을 찾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먼저 그는 왕이 탄 동물에 오르기 위해 현자들의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법은 신하가 왕의 개인적인 용도로 따로 둔 물건을 이용하는 것을 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예외를 인정할 만한 근거는 임박한 위험뿐이었다.
아비새가 왕의 짐승에 올라타자마자 그는 블레셋 땅에 있었습니다. 땅이 기적적으로 수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네 거인 아들의 어머니인 오르바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그를 죽이려 했지만 그는 타격을 예상하고 그녀를 죽였습니다. 이스비는 이제 두 명의 상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창을 땅에 꽂고 다윗을 공중으로 던졌습니다. 그가 쓰러지면 창에 갇힐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 순간 아비새가 나타났고,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외치면서 다윗을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아 두었습니다.
아비새는 다윗에게 어떻게 이렇게 사악한 곤경에 처하게 되었는지 물었고, 다윗은 그에게 하나님과의 대화와, 자신의 집을 파괴하는 것보다 적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택한 자신의 선택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아비새는 “기도를 뒤집고, 자신을 위해 간청하고, 후손을 위해 간청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자녀들이 밀랍을 팔게 하고, 그들의 운명에 대해 스스로를 괴롭히지 마십시오.”라고 대답했습니다. 두 사람은 기도를 합치고, 하나님께 다윗의 위협적인 운명을 돌이켜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아비새는 다시 하나님의 이름을 외쳤고, 다윗은 다치지 않고 땅에 쓰러졌습니다. 이제 두 사람은 이스비의 추격을 받으며 재빨리 도망쳤습니다. 거인이 어머니의 죽음을 듣고 힘이 빠져서 다윗과 아비새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방문
다윗의 슬픔 가운데는 그의 통치 기간 동안 팔레스타인에 찾아온 재앙이 있으며, 그는 자신의 잘못으로 재앙을 당했기 때문에 더욱 그 재앙을 느꼈습니다. 먼저 기근이 있었는데, 그것은 너무나 황폐해서 아담 시대부터 메시아 시대까지 일어날 가장 심각한 재앙 중 하나로 꼽힙니다. 기근이 퍼진 첫 해에 다윗은 그 땅에 우상 숭배가 행해지고 있는지, 그리고 비를 내리게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그의 의심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두 번째 해에 그는 자신의 왕국의 도덕적 상태를 조사했습니다. 왜냐하면 음란함은 우상 숭배와 같은 처벌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그는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세 번째 해에 그는 자선 사업에 주의를 돌렸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이 면에서 죄를 지었을 것입니다. 이 부문의 남용도 기근이라는 처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그의 수색은 결실이 없었고 그는 하나님께 대중의 곤경의 원인을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사울은 거룩한 기름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 아니었나요? 그는 우상 숭배를 폐지하지 않았나요? 그는 낙원에서 사무엘의 동반자가 아니었나요? 하지만 여러분이 모두 이스라엘 땅에 살고 있는 동안 그는 ‘땅 밖에’ 있습니다.” 다윗은 학자들과 그의 왕국의 귀족들과 함께 야베스 길르앗으로 가서 사울과 요나단의 유해를 발굴하고 엄숙한 행렬로 이스라엘 전역을 거쳐 베냐민 지파의 유산지까지 운반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묻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은 왕에게 바친 애정 어린 조공은 하나님의 연민을 불러일으켰고 기근은 끝났습니다.
사울에 대한 죄는 이제 사면되었지만, 기브온 사람들을 대하는 사울 자신의 죄는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사울이 일곱 명을 죽였다고 비난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개종자들 때문에 그분의 백성을 벌하시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신 대답은 “네가 멀리 있는 자들을 가까이 데려오지 아니하시면 가까이 있는 자들을 옮기시리라”였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복수심을 채우기 위해 사울의 가족 일곱 명의 목숨을 요구했습니다. 다윗은 그들을 달래려고 했고, 그들이 희생자들의 죽음에서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며 대신 은과 금을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그들 각자를 개별적으로 대했지만, 기브온 사람들은 냉혹했습니다. 그는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세 가지 특성은 자비롭고, 순결하며, 동료 인간을 섬기는 데 은혜롭습니다. 이 특성 중 첫 번째는 기브온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이스라엘과의 교제에서 배제되어야 합니다.”
사울의 일곱 후손을 기브온 사람들에게 넘기는 것은 그의 모든 후손을 법궤를 지나가게 함으로써 결정되었다. 법궤를 지나가기 전에 체포된 자들은 지정된 희생자들이었다. 므비보셋은 다윗의 기도에 응답하여 아무런 제지 없이 지나가도록 허락받지 않았다면 불행한 사람 중 한 명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친구 요나단의 아들로서 뿐만 아니라 그에게 토라를 가르친 교사로서도 사랑받았다.
사울의 후손들에게 닥친 잔혹한 운명은 건전한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보고 들은 모든 이방인들이 외쳤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같은 신은 없고,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나라는 없다. 비참한 개종자들에게 가해진 잘못은 왕의 아들들에 의해 속죄되었다.” 이방인들 사이에서 유대인의 정의감의 이러한 표현에 대한 열광이 너무나 커서 그들 중 15만 명이 유대교로 개종했습니다.
다윗의 경우, 기근과 관련하여 그의 잘못은 그가 자신의 사적 재산을 사람들의 고통을 완화하는 데 사용하지 않은 데 있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돌아왔을 때, 이스라엘의 여인들은 그에게 금과 은 장신구를 주었습니다. 그는 그것들을 성전을 짓는 데 사용하기 위해 따로 보관했고, 심지어 3년간의 기근 동안에도 이 기금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성전을 위한 네 돈을 저축하기 위해 인간을 죽음에서 구출하는 것을 삼갔구나. 참으로 성전은 네가 지을 것이 아니라 솔로몬이 지을 것이다.”
다윗은 오경에 있는 율법을 어기고 이스라엘 백성을 인구 조사한 일로 더욱 비난받을 만합니다. 왕이 다윗에게 백성을 세라는 임무를 주었을 때, 요압은 온갖 노력을 다해 다윗을 그의 의도에서 돌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화가 난 다윗은 “당신이 왕이고 내가 장군이냐, 아니면 내가 왕이고 당신이 장군이냐”고 말했습니다. 요압은 순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갓 지파를 가장 먼저 세도록 선택했습니다. 그는 갓 지파가 독립적이고 고집이 세어서 왕의 명령을 집행하는 데 방해가 될 것이고, 다윗이 인구 조사를 하겠다는 계획을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갓 지파는 요압의 기대를 실망시켰고, 그는 단 지파로 가서 하나님의 형벌이 내려진다면 우상 숭배하는 단 지파에게 내리기를 바랐습니다. 요압은 자신의 사명이 싫었기 때문에 9개월 동안 사명을 집행했지만, 훨씬 더 짧은 시간 안에 끝낼 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왕의 명령을 그대로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직접 사람들에게 인구 조사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그가 다섯 아들의 가족의 아버지를 본다면, 그는 그에게 그들 중 몇 명을 숨기라고 명령할 것입니다. 모세가 세운 모범을 따라, 그는 레위 사람들을 계수에서 제외했고, 마찬가지로 베냐민 지파도 제외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 크게 파괴된 지파를 대신하여 특히 심각한 우려를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윗은 얻은 실제 수를 알리지 않았습니다. 요압은 두 개의 목록을 작성하여, 왕이 계략에 대해 의심이 없다고 판단되면 부분적인 목록을 제공할 의도였습니다.
예언자 갓이 다윗에게 와서 대중적 인구 조사라는 중대한 범죄에 대한 형벌로 기근, 적의 압제, 또는 전염병 중에서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병든 사람의 입장에 있었고, 아버지 옆에 묻힐지 어머니 옆에 묻힐지 묻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왕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전쟁의 재앙을 택하면, 사람들은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그는 자신의 용사들을 돌보니까’라고 말할 것입니다. 내가 기근을 택하면, 사람들은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그는 자신의 재물을 돌보니까’라고 말할 것입니다. 나는 전염병을 택하겠습니다. 그 재앙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닥칩니다.” 전염병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맹위를 떨쳤지만, 많은 희생자를 냈습니다. 가장 심각한 손실은 아비새의 죽음이었습니다. 그의 경건함과 학식은 그를 7만 5천 명의 군대의 대항 세력으로 만들었습니다.
다윗은 눈을 높이 들어 이스라엘의 죄가 땅에서 하늘로 쌓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천사가 내려와 그의 네 아들, 선지자 갓과 그를 따르는 장로들을 죽였습니다. 천사가 왕의 옷에 떨어지는 칼을 닦았을 때 커진 이 광경에 대한 다윗의 공포가 그의 사지에 자리 잡았고, 그날 이후로 그들은 떨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죽음
다윗은 어느 날 하느님께 언제 죽을지 알려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무도 자신의 종말을 미리 알 수 없도록 정하셨기 때문에 그의 청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에게 한 가지 계시가 있었는데, 그것은 안식일에 칠십 세의 나이로 죽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금요일에 죽도록 허락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 소원도 하느님께서 솔로몬이 성전에서 바친 천 개의 번제보다 다윗이 토라를 공부하며 보낸 하루를 더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거부당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일요일까지 살 수 있도록 간청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것이 솔로몬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역시 거부당했습니다. 한 통치 기간이 다른 통치 기간과 털끝만큼도 겹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다윗은 모든 안식일을 전적으로 토라 공부에 바쳤습니다. 죽음의 천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죽음의 천사는 하느님의 계명을 이행하는 데 바쳐진 동안에는 사람을 죽일 힘이 없습니다. 죽음의 천사는 다윗을 차지하기 위해 교활한 술책을 써야 했습니다. 어느 안식일은 마침 오순절이기도 했는데, 왕은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정원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는 궁전에서 정원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가서 내려가 소리의 원인을 알아냈습니다. 그가 계단에 발을 디딘 순간 계단이 굴러떨어졌고 다윗은 죽었습니다. 죽음의 천사는 다윗이 공부를 중단할 순간을 이용하기 위해 소리를 냈습니다. 왕의 시체는 안식일에 옮길 수 없었는데,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는 고통스러웠습니다. 왕의 시체가 햇빛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독수리 여러 마리를 불러서 시체를 지키며 뻗은 날개로 시체를 가렸습니다.
낙원의 데이비드
다윗의 죽음은 그의 영광과 위엄의 종말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단지 장면의 변화를 일으켰을 뿐입니다. 하늘의 영역에서도 땅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윗은 으뜸가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의 머리 위의 면류관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빛나고, 그가 낙원을 떠나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마다 태양, 별, 천사, 세라핌, 그리고 다른 거룩한 존재들이 그를 만나러 달려갑니다. 하늘의 법정에는 하나님의 보좌 바로 맞은편에 그를 위해 거대한 크기의 불의 보좌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보좌에 앉아 다윗 가문의 왕들과 다른 이스라엘 왕들에게 둘러싸여 그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시편을 낭송합니다. 마지막에 그는 항상 “주께서 영원무궁토록 통치하신다”는 구절을 인용하는데, 이에 대천사 메타트론과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은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께서!”라고 대답합니다. 이것은 거룩한 하요트와 하늘과 땅이 함께 찬양하라는 신호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윗 가문의 왕들은 이 구절을 부릅니다. “주께서 모든 것의 왕이 되실 것이요, 그 날에는 주께서 오직 하나이시고, 그 이름도 오직 하나이시리라.”
다윗에게 주어진 가장 큰 영예는 심판 날에 주어질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낙원에서 모든 의로운 자들을 위해 큰 연회를 준비하실 것입니다. 다윗의 청원에 하나님께서 친히 연회에 참석하시고, 다윗의 왕좌가 놓일 반대편에 있는 그분의 왕좌에 앉으실 것입니다. 연회가 끝나면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전하는 포도주 잔을 아브라함에게 건네시며 “세상의 경건한 자들의 아버지인 네가 포도주 위에 축복을 선포하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나는 축복을 선포할 자격이 없습니다. 나는 또한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는 이스마엘 사람들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축복을 선포하라. 네가 제단에 제물로 묶여 있었으니까”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는 합당하지 않다”라고 그는 대답할 것입니다. “내 아들 에서의 자손들이 성전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야곱에게 “네가 흠 없는 자식들을 축복하라”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야곱은 또한 두 자매와 동시에 결혼했다는 이유로 그 영예를 거부할 것입니다. 나중에 그것은 토라에 의해 엄격히 금지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느님은 모세에게 “축복을 말하라. 너는 율법을 받았고 그 계명을 다 이루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모세는 “나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내가 성지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성지로 인도하고 율법의 계명을 다 이룬 여호수아에게 그 영예를 주실 것입니다. 그도 아들을 낳을 자격이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축복을 거부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느님은 다윗에게 “잔을 들고 축복을 말하라. 이스라엘에서 가장 달콤한 가수이자 이스라엘의 왕이여. 그러면 다윗은 ‘그렇다. 축복을 말하겠다. 나는 그 영예를 받을 자격이 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자 하느님은 토라를 가져다가 여러 구절을 읽어주시고 다윗은 낙원에 있는 경건한 사람과 지옥에 있는 악한 사람이 모두 큰 소리로 아멘으로 합창하는 시편을 낭송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천사들을 보내어 악한 자들을 지옥에서 낙원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데이비드의 가족
다윗은 사울의 딸 미갈을 포함하여 여섯 명의 아내를 두었는데, 그녀는 성경 이야기에 나오는 목록에서 애칭인 에글라, “칼프킨”으로 불립니다. 미갈은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지녔고 동시에 사랑하는 아내의 모범이었습니다. 그녀는 다윗을 아버지의 손에서 구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아버지이자 왕인 사울이 그녀에게 다른 남자와 결혼하라고 명령했을 때 그녀는 겉보기에 동의했을 뿐입니다. 그녀는 다윗과의 결혼을 합법적이라고 생각한 이유로 사울의 분노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가짜 결혼을 했습니다. 미갈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착했습니다. 그녀는 여동생 메랍의 고아 아이들에게 매우 특별한 친절을 베풀어서 성경은 미갈이 “아드리엘에게 낳은” 다섯 아들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러나 아드리엘은 그녀의 매제이지 남편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그의 아이들을 자신의 자식처럼 대하며 키웠습니다. 미갈은 경건함의 모범에 못지않았습니다. 율법이 그녀를 여성으로서 의무에서 면제해 주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필락테리를 사용하는 계명을 지켰습니다. 이 모든 미덕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다윗을 경멸한 죄로 하느님께 엄중히 벌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다윗이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만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때, 다윗을 존엄성이 없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못했고, 마침내 아이를 낳는 축복을 받았을 때, 그녀는 아이를 낳으면서 자신의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아내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아비가일이었습니다. 그녀는 아름다움, 지혜, 예언적 재능을 모두 갖추고 있었습니다. 사라, 라합, 에스더와 함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성 4인조를 형성합니다. 그녀는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남자들은 그녀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열정을 느꼈습니다. 그녀의 영리함은 다윗을 처음 만났을 때 드러났습니다. 그녀는 남편 나발의 목숨이 걱정되었지만, 여전히 극도로 차분한 마음으로 분노한 그에게 의식적인 질문을 했습니다. 그는 대답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는 그 질문은 밤에 조사할 것이 아니라 낮에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비가일이 개입하여 사형 선고도 낮에만 내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윗의 판단이 옳았다 하더라도, 법에 따라 나발에게 사형을 집행하려면 새벽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다윗이 나발과 같은 반역자는 적법절차에 따라 주장할 수 없다고 반대하자, 그녀는 “사울은 아직 살아 있고, 당신은 아직 세상으로부터 왕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라는 말로 반박했습니다.
그녀의 매력은 그녀의 도덕적 힘이 그를 견제하지 않았다면, 이 기회에 다윗을 포로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이것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표현을 통해 그 날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밧세바라는 여자가 그의 삶에서 재앙적인 역할을 할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그에게 이해시켰습니다. 이렇게 그녀는 예언의 은사를 나타냈습니다.
아비가일조차도 요염함이라는 여성적 약점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여종을 기억해 주십시오”라는 말은 결코 그녀에 의해 발언되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기혼 여성으로서 그녀는 남자의 주의를 자신에게 돌리려고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여성의 낙원에서 그녀는 일곱 구역으로 나뉜 구역 중 다섯 번째 구역을 감독하고 있으며, 그녀의 영역은 족장들의 아내들인 사라, 리브가, 라헬, 레아의 영역과 인접해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들 중에서 특히 언급해야 할 사람은 하깃의 아들 아도니야인데, 그는 왕위를 노리는 자였다. 그가 앞서 달리도록 준비시킨 50명은 비장과 발바닥의 살을 베어내어 전령의 자리에 적합하게 되었다. 아도니야가 왕의 위엄을 위해 지명되지 않았다는 것은 다윗의 왕관이 그에게 적합하지 않았다는 사실로 명백해졌다. 이 왕관은 항상 다윗 가문의 합법적인 왕에게 적합하다는 놀라운 특이성을 가지고 있었다.
칠압은 그의 어머니 아비가일에게 합당한 아들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의 의미는 “아버지와 같다”인데, 이는 외모가 다윗과 매우 비슷해서 그에게 주어진 것이었고, 이 상황은 다윗이 나발의 과부와 너무 성급하게 결혼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침묵시켰습니다. 또한 칠압은 지적으로 다윗의 아버지임을 증명했습니다. 사실, 그는 아버지보다 학문에서 앞섰고, 심지어 요나단의 아들인 다윗의 스승인 메피보셋보다 뛰어났습니다. 그의 경건함 때문에 그는 살아서 낙원에 들어간 소수의 사람 중 하나입니다.
다말은 어머니가 유대교로 개종하기 전에 태어났기 때문에 다윗의 자녀 중 한 명이라고 불릴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암논과의 관계는 엄격한 의미에서 자매와 형제였다면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의 직계 가족에는 400명의 젊은 시종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여인들의 아들들이었다. 그들은 이교도식 머리 모양을 하고 있었고, 금빛 전차에 앉아 군대의 선봉을 이루었으며, 그들의 외모로 적을 두렵게 했다.
그의 무덤
다윗이 묻혔을 때, 솔로몬은 그의 무덤에 많은 보물을 넣었습니다. 1300년 후 대제사장 히르카누스는 거기에 숨겨진 돈에서 천 달란트를 꺼내 그리스 왕 안티오쿠스의 예루살렘 포위 공격을 막는 데 사용했습니다. 헤롯 왕도 막대한 돈을 훔쳤습니다. 하지만 약탈자 중 누구도 왕들의 안식처에 침투할 수 없었습니다. 다윗 옆에 그의 후계자들이 묻혔습니다. 너무 교묘하게 땅속에 파묻혀서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한 무슬림 파샤가 영묘를 방문했는데, 그가 영묘의 창문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다이아몬드와 진주로 장식된 그의 무기가 무덤으로 떨어졌습니다. 한 무슬림이 창문을 통해 무기를 꺼내려고 내려왔습니다. 그가 다시 들어올려졌을 때 그는 죽었고, 같은 방식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다른 세 명의 무슬림도 동지의 운명을 맞이했습니다. 카디의 권유에 따라 파샤는 예루살렘의 랍비에게 유대인들이 무기를 돌려받을 책임이 있다고 알렸습니다. 랍비는 기도에 바칠 3일간의 금식을 명령했습니다. 그런 다음 위험한 심부름을 맡을 사자를 지정하기 위해 제비를 뽑았습니다. 제비는 경건하고 정직한 사람인 회당의 경비원에게 뽑혔습니다. 그는 무기를 확보하고 파샤에게 돌려주었고, 파샤는 그 후 유대인들을 친절하게 대함으로써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 비들은 나중에 무덤에서의 모험을 하캄 바시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가 내려갔을 때, 갑자기 그의 앞에 품위 있는 외모의 노인이 나타나서 그가 찾던 것을 건네주었습니다.
다윗의 무덤에 대한 또 다른 기적적인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난하지만 매우 독실한 유대인 세탁부가 한때 무덤 관리인에게 설득되어 무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녀가 무덤 안에 들어가자마자 그 남자가 입구를 못 박고 카디에게 달려가 유대인 여자가 들어갔다고 알렸습니다. 화가 난 카디는 그 여자를 오만함으로 인해 불태우려고 그 자리로 서둘러 갔습니다. 그 불쌍한 여자는 공포에 질려 울기 시작했고 신에게 도움을 간청했습니다. 갑자기 빛이 쏟아져 어두운 무덤을 비추었고, 존경받는 노인이 그녀의 손을 잡고 땅 아래로 인도하여 그녀가 열린 곳에 도달할 때까지 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집으로 서둘러 돌아가라. 네가 집을 비운 것을 아무도 모르게 하여라”라는 말과 함께 그녀와 헤어졌습니다. 카디는 그의 집행관들에게 무덤과 그 주변을 철저히 수색하게 했지만, 관리인이 그 여인이 들어갔다고 예언자를 두고 거듭거듭 맹세했지만, 그 여인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이제 카디가 그 여인의 집으로 보낸 사자들이 돌아와서, 그녀가 바쁘게 씻는 것을 보고, 그녀가 다윗의 무덤에 있었는지에 대한 그들의 질문에 크게 놀랐다고 보고했다. 따라서 카디는 그의 거짓 진술과 위증으로 인해 관리인이 무고한 여인에게 의도된 바로 그 죽음을 맞아야 한다고 결정했고, 그래서 그는 불에 타 죽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기적을 의심했지만, 그 여인은 죽기 몇 시간 전까지 자신의 비밀을 밝히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 다음, 학자가 그녀의 죽음의 매년 기념일에 그녀를 위해 카디시를 낭송한다는 조건으로, 그녀의 소유물을 회중에게 물려주었다.